그로테스크한 대화의 수준

요즘의 대화수준.
-만화방을 나와 사거리로 향하던 우리의 대화.
나 : 시가테라 죽이지. 두더지도 괜찮은 것 같아.
해석오빠 : 응. 괜찮아. 근데 <이나중탁구부> 읽기가 불편했어. 이게 수위는 적절한 듯.
나 : 어떻게 불편한데?
해석오빠 : 그냥...불편해. 이상해. ㅋㅋ
나 : 똥도 먹어?
해석오빠 : 똥은 안먹는데...그정도로 불편해.
나 : 그정도 쯤이야. 케케.

-오랜만에 만난 임헌중과의 대화

나 : 내가 좀 진상인가.
임헌중 : ㅋㅋ. 그건 너무 전문용어잖아.
나 : 나 좀 진상같애.
임헌중 : 정신을 안드로메다에 두니까 그렇지.
나 : 그럼 어떻게해? 나 그냥 이렇게 살아? 진상부리면서.
임헌중 : 너 같은 애를 만나. 이해해주는. 하긴 그런 존재가 둘이나 되면 별로다.
나 : 그러니까.
임헌중 : 그냥 살어.
나 : 응. 하지만 외롭다.
임헌중 : 이 쓔레기. ㅋ.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6/08 15:34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1)

자기만족적 친절

친절에 관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나눈 대화.

 

나 : 그래서 내가 잘못한건가.
J : 그건 아니지. 물론 네가 좀 귀찮게 하긴 했겠지만.
나 : 음. 귀찮을 수는 있겠지.
J : 넌 뭘 같이 하려고 한거야?
나 : 유람선을 타는데 같이 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상해?
J : 왜?
나 : 그냥 별 생각없이, 그 때 떠올랐을 뿐이야.
J : 귀찮게한 이유는 뭐야?
나 : 그냥 궁금해서 잘 안다길래 물어봤을 뿐이야.
J : 모두 별 이유가 없군. 그렇다면, 네가 상처받은 이유도 없어야 하지 않나?
나 : 난 만인의 친절을 원하고 있었던걸까?
J :  그건 이기적이지. 넌 타인의 친절을 원할 자격도 없고, 타인에게 친절할 의무도 없는거야.
예를 들어, 네가 길을 걸어가다 조금 출출해서 붕어빵을 사먹으려 했지.
아주 배고픈건 아니라서 "딱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거야.
그런데 붕어빵을 맛있게 먹는 널 보고 붕어빵 아주머니가 새로나온 계란빵을 하나 더 주셨어.
넌 그걸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를 것 같았지만 일단은 고맙다고 하고서는 속으로 생각하지. 에이...
첫 번째 사건은 그런거야. 넌 기대하지 않은 친절을 주려한거지. 타인을 불편하게 하면서.
나 : 친절을 주는건 일종의 자기만족감 같은거군.
J : 물론 아닐 수도 있어. 너처럼 친절을 요구하는 사람이 또 있으니까.
넌 친절을 요구했지. 물론 너의 근거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친절을 댓가로 생각한거고.
두 번째 사건은 그런거야. 넌 원치 않는 인정을 댓가로 친절을 요구하는 무례를 저지른거야.
그 사람이 원래 다소 무례한 사람이라면, 너 엄청 귀찮고 재수없었겠지.
나 : 응. 그랬을 것 같기도 하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또 친절하게 사과하는건, 자기중심적 처사가 아닐까?
J : 응. 그러니까 쌩까. 넌 요즘 지나치게 착해지려는 경향이 있어. 원래 넌 안 그랬잖아?
나 : 응. 너도 죽다 살아나봐. 착해지고 싶을거니까.
J : 착해지려는 것도 네 이기심이고, 그로 인한 친절 역시 자기중심적이야.
나 : 응. 인정해. 그럼 나 친절 안할래.
J : 병신. 안드로메다는 멀지 않아.

그리하여 친절한 금자씨는 총을 들었던건가. ㅋ.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6/08 15:15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0)

손으로도 셀 수 없을 것 같던 시간을 지나오니

손으로도 셀 수 없을 것 같던 시간을 지나오니

명확해지는 것들 앞에 벌거벗은 기분.

시간을 겪어온다는 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남긴다는 것과 같은 말.

 

위약은 위선보다 나쁘다는 남궁의 말을 믿게 되었지.

나의 생존법을 위로해준 최양에게 고마움도 느꼈지.

사람 간의 관계와 무수한 감정들 속에서 도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도 깨달았지.

잔인할 수 있는 사람은 또한 나약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았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뿐.

 

변화가 아니라 재정립이 필요한거야.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6/08 14:45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0)

치료_step.1

내 주위의 몇몇 사람들을 알고 있겠지만,
요즘 나는 치료 중이다.
심장도 치료 중이고, 마음도 치료 중이다.
건강하게 살고 싶은 나의 욕구는, 남보다 더 건강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딱 남들만큼만 건강하고 싶은 정도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치료를 시작했다.
나의 든든한 두 친구의 도움과 함께.
그리고 이제부터 그 치료의 시간들을 남기기로 했다.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퇴행을 막기 위해서이다.
과정을 때때로 더듬어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결코 다시 동일한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치료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인정'이다.
나는 이제 겨우 이 첫번째 단계를 넘어서는 중이다.

인정.
내가 아픈 것에 대한 인정.
당연히 아플 수 있다는 인정.
그리고 내가 아픈 상황에 대한 인정.

나의 병은 의사와 친구들의 말대로, 회피와 부정으로 인해 견고한 벽을 쌓아버렸으며
원인 조차 덮어두려 했었다.
나의 쿨한 모습은 두려움에 떠는 내 속의 아기가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이었으며,
그것은 내가 이제껏 살기 위해 선택한 생존방법이었다.

또한 P와의 관계 역시 회피의 일종이었는데,
믿음과 신뢰는 내가 상처 받지 않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회피의 일종'이었으며
그것은 때론 현실과 괴리된 가상의 인물에 대한 집착과 다르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도,
그리고 이미 벌어진 사건들과 나는 용서할 만큼 너그럽지 않다는 것도.

모든 것들로부터 연관성을 제거하고 독립적인 '나' 자체를 보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
'나'를 위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는 자학과 자책 대신 최양의 조언대로 '생존법'을 발견하여 열심히 살아온 내 속의 '아기'에게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이제, 이렇게 마음 먹어야 한다.
관계에 앞서 나를 걱정해.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와 관계맺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어.

인정의 다음 단계를 위해 조만간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겠다.
인정...그 다음은...역시 화해인가.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3/18 23:54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3)

건강한 여행

관계의 태풍 속에서 나의 선택만이 남아있던 그 때에,
운이 좋았던건지 멀리 출장갈 일이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고속도로를 지나 도착한 낯선 전라도의 작은 마을들.

농사 짓고 고기 잡는 사람들의 건강한,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밤마다 눅눅한 모텔방으로 돌아올 때면,
태풍의 핵이 결국은 사그라들고 그 핵 속에 분명한 무언가가 보였었다.

'땅끝마을' 해남까지 갔다 다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 마음에는 단 하나의 길만 보였다.
단 하나, 내가 원하는 단 하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울면서 뛰어갔던 그 곳.
내가 원하는 단 하나.

공기이고, 물이고, 바람이고, 햇살이고....그리고 우주였던 단 하나.
그럴 거라고 믿었던 단 하나.

가변성은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지만,
우주가 부정되는 그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전라도로의 여행이 필요한 것 같다.

무안의 용감하고 씩씩하던 부녀회장님이 덥석 잘라주시던 내 얼굴만한 고구마의 하얀 속살,
해남의 상다리 휘청일 정도의 넉넉한 인심.

다들 그렇게 산다고, 조금씩 부정당하고 좌절하면서 또 그렇게 산다고...
삶 속에서 위로받는 건강한 사람들의 기운과 자연의 위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새로운 우주가 생성되어 있겠지...조그맣게 싹이 튼 자존감과 함께.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3/18 23:40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1)

후레쉬맨에 대한 노스텔지어, 그 정체는?

오랫만에 블로그 포스트를 업뎃하면서, 무슨 내용이 좋을까 고민하였다.
물론, 나의 블로그가 충성도 높은 방문자가 있다거나 유명 블로그로 추천될 만큼 뛰어난 퀄리티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단 하나의 포스트에도 나름 고민을 하고 있다.
기특하게 등 토닥토닥.

"후뢰시맨의 타루미 토타" 인터뷰(미디어다음)

빈둥빈둥 미디어다음을 떠다니다가 찾아낸 반가운 기사 하나.
아, 후레쉬맨 레드 '진'은 나이가 들어서도 참 멋있군.
('후뢰시맨'은 어쩐지 발음하기가 어렵다)

후레쉬맨을 이야기하려면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대구의 한 동네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고만고만한, 소박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동네에는 또래친구들이 많아서 항상 신나는 일이 가득했다.
보통 두, 세 살 터울까지는 무리를 지어 모여다녔는데,
남자/여자, 저학년/고학년을 구분짓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5학년 전까지는 밥 먹는 시간과 학교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모여 다니곤 했다.

그 시절 아이들이 모두 그러하듯, 우리는 후레쉬맨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유사 영웅인 바이오맨을 아류로 취급하며
후레쉬맨의 숭고한 영웅성을 동경하였다.
나른한 오후는 모두가 모여 후레쉬맨 놀이를 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악의 무리를 잡기 위해 레이저검을 들고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저녁먹자'하고 2층 베란다에서 불렀으니.
장난감가게에서 하나 둘씩 사모은 후레쉬맨 무기들은 영화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교하였으며,
무언의 동의 아래 각자의 역할도 나뉘어져 그에 맞는 무기들을 항상 준비해 왔었다.

무리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진돗개 소년'(그의 집에는 큰 진돗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참고로 그 때 우리 집 마당에는 잡종개 방울이가 살던 때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방울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기회가 된다면 따로 들려주겠다.)이 자연스럽게 레드 후레쉬가 되었고,
남자아이들 중 3번째 서열까지 영광의 후레쉬맨 남자 역할이 주어졌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둘 밖에 없어서 의무적으로 여자 후레쉬맨의 역할이 주어졌는데,
나는 노란색을 좋아해서 옐로 후레쉬맨을 맡았다.
모두가 짐작했겠지만, 서열도 후달리고 딱히 특징이 없는 조무래기들은 악의 무리가 되었다.
(악의 무리들은 별로 악하지 않아서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면 울기 쉽상이었다)

우리는 '평화의 수호자요, 정의의 지구방위대'였으며,
악의 무리는 물론 예외였지만 후레쉬맨 5명은 언제나 똘똘뭉쳐 서로의 싸움을 도와주었다.
우리의 놀이는 폭력적이기 보다 역할과 사명을 허구적 어린이영화를 통해 학습하는 과정이었으며,
누구보다 후레쉬맨으로써의 명예를 다하기 위해 의젓하게 행동하려 하였다.

Daum 검색 후뢰시맨 관련 영상 보러가기

타루미 토타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나의 유년기와 맞닿아 있다.
'영웅론'. 후레쉬맨이 영웅이었던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그들을 영웅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가상의 영웅과 현실의 영웅, 어린시절의 영웅과 현재의 영웅.
그 괴리를 나는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이 대목에서 나는 타루미 토타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후레쉬맨은 어린이들에게 국적을 넘어선 인류애와 동료애를 가르쳐 주었다.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구해내는 자발적 사명감과 책임감이 후레쉬맨에 열광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다양한 무기와 팀웍은 더 빛이 났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 영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가치관이 성장하며 우리에게 영웅은 다른 의미가 되어갔다.
그의 영웅론이 역설하는 '현실적 영웅'을 제시해주는 어른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가치-인류애 등은 구체적이고 현실적 가치로써 재탄생되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유년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다.

나는 후레쉬맨에 대한 아련한 노스텔지어가 바로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아톰에 환장하여 '플루토'의 다음 편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영웅이 되지 못한 안타까움, 그리고 동심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존재하고 있던 가치에 대한 믿음.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후레쉬맨을 비롯한 나의 영웅들을 항상 그리워 한다.

*추신 : 후레쉬맨은 나에게 혼란을 안겨주기도 하였는데, 타루미 토타가 분한 '레드'역은 팀의 리더이자 후레쉬맨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남자가 빨간색이라니. 보통 여성적 컬러로 생각되는 빨간색을, 그것도 빨간 타이즈를 신은 리더란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그에 대한 음모론이 존재했는데, 붉은 색으로 대표되는(일장기가 그렇지 않나) 일본이 어린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일본 우월주의를 심어주기 위한 계략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3/05 15:47 | 타인의 취향 | 트랙백 | 덧글(9)

Ten things Google has found to be true

'우리 회사의 철학은 뭐예요?'
입사 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사장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물론, 하나의 질문이지만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했다.
아마도 당시 'Don't be evil.'이라는 Google의 슬로건을 어디선가 줏어듣고,
그런 멋진 말이 우리 회사에도 하나쯤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듯 하다.

Don't be evil이라는 말에는
자신들의 비즈니스 원칙은 물론, 웹이라는 공간에 대한 Google의 관점을 정확히 담고 있다.
구글 홈페이지에 게시된 다음의 내용들은 확신한 근거자료이다.

재미있다, 참.
악하지 않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들이 세상의 본질을 바꾸고 있으니.
부의 재분배, 지식체계의 재편, 민주주의의 확장은 악하지 않은 그들에 의해 정방향으로 가고 있다 믿는다.


Ten things Google has found to be true
1. Focus on the user and all else will follow.
2. It's best to do one thing really, really well.
3. Fast is better than slow.
4. Democracy on the web works.
5. You don't need to be at your desk to need an answer.
6. You can make money without doing evil.
7. There's always more information out there.
8. The need for information crosses all borders.
9. You can be serious without a suit.
10. Great just isn't good enough.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2/02 19:35 | Web biz. | 트랙백 | 덧글(2)

Top 5 Consumer Trends For 2007

Top 5 Consumer Trends For 2007(Trendwatching)

They come complete with wacky names like TRYSUMERS, STATUS LIFESTYLES and TRANSPARENCY TYRANNY.
They actually will inspire you to come up with new products, services and experiences for your ever-more
demanding customers.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1/31 11:25 | Marketing | 트랙백 | 덧글(0)

<Blood Diamond>



















미국 개봉 포스터를 올린 것은 참 잘한 것이라 생각된다.
'최강 액션' 따위의 초라한 수식어로 영화를 폄하하는 짓은 정말이지...
한심하다는 생각뿐.

영화를 선택한 기준은 단 두 가지였다.
1) <디파티드> 이후 물오른 레오의 연기 내공을 다시금 가늠하기 위해
2) <라스트 사무라이>의 2% 부족한 느김을 에드워드 즈윅이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궁금해서

물론 선택 기준의 최후 만족도를 평가하자면,
1) 남자가 되어 돌아온-30대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안습이지만, 여튼-레오의 연기는 <디파티드>보다 훌륭했다. 그 불안한 눈빛하며, 거칠어진 몸짓과 마스크하며, 내면의 갈등이 일어날 때 초조한듯 경직되는 뺨하며...그는 진정 Actor의 포스를 완성하고 있는 듯 하다.
(혹자는 '로미엣과 줄리엣' 시절의 레오의 포스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그런 꽃미남류의 가냘픔 따위 이젠 국내에도 수두룩 하지 않은가. 강동원, 조인성 등으로 대리만족 하시길.)
2) 에드워드 즈윅은 또 2%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다. 보는 눈은 넓어졌지만, 어쩐지 디테일이 약하다. 그래서 또 그의 '다음 작품'을 보게될 것 같다.(어떻게 생각해보면...이걸 노린건가-_-;; 영원한 기대 속에서 표를 팔아보겠다는...음트트)










스토리를 전혀 모르고 간 것은 선택 기준 외에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선사하였다.
반전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정치적인 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였지만 그건 뭐 현실도 다를 바 없으니.
다만 칭찬하고 싶은 것은 전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되,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는 것과,
전쟁과 정치적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상황 속에서 얘기하고 싶은 바를 암시하기 보다 배우의 다이렉트 대사로 할 말 다 했다. ㅋㅋ '최강 액션'을 보고 '빵빵하네'라며 극장을 나갈 미숙아들을 위한 감독의 배려랄까.)

"세상은 언제나 전쟁을 하고 있었어.언제 세상이 미치지 않았던 때가 있던가?"
"가끔은 궁금해져. 우리가 하는 일을 신이 용서하실지.. 하지만 금새 깨닫곤 하지.. 신이 오래 전에 이 곳을 떠났다는 걸..."
"당신도 공범이야. 다이아의 주요소비층이 동화같은 결혼을 꿈구는 미국 여자지. 미국인은 다 공범이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들의 인류애에 존경을 표하면서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자본의 연대는 공고하여 각종 무기들을 동원하여 전쟁을 선과 악의 대결 쯤으로, 그리하여 언젠가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종교, 인종, 석유... 전쟁의 이유는 참 많지만, 종교도 인종도 결국 헤게모니의 싸움이며 이 시대의 헤게모니라는 것이 자본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더 전쟁을 묵인해야 할까.

하여튼, 내가 좋아하는 레오가 좋은 영화에 출연해서 칭찬 듬뿍 주고 싶군.
그런 의미에서 왕년의 레오의 모습 한 컷!!!!ㅋㅋ










*조금 씁쓸하기도 한데...그 많은 논리들로 전쟁의 매커니즘을 역설하였던 것보다...영화 한 편이 주는 임팩트가 더 크니...역시 영상시대인가.-_-;;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1/29 16:17 | 타인의 취향 | 트랙백 | 덧글(1)

냉동고등어, <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그럴 듯한 포장 없이 이렇게 담백하게 사랑, 사람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뭐, 요시다 슈이치에게 '하루키와 류를 잇는 차세대 주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지만
무라카미 형제 특유의 건방이나 허무주의 대신에 좀 더 따뜻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듯.

예전에 '고스케'라는 일본이름을 듣고 '그 이름 참 이쁜걸'하며
입을 동그랗게 모아서 고-오-스-으-케라고 발음해보던 기억이 있는데,
주인공 '료스케' 역시 그랬다. '미-이-오'라며 마지막에 입이 얌전히 모아지는 그 이름 또한 멋지고.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삼순이에게 갈거냐고 묻는 정려원에게
삼식이가 '사람은 죽을 걸 알면서 살잖아'라고 답하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현대 사회의 건조하고 표면적인 관계를 압축한 듯한 료스케와 미오의 만남과 관계맺기는
죽을 걸 알면서도, 영원이 존재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변하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만나고 상처받는, 외롭지 않게 살기 위한 '생존적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연애를 할 때마다, 나는 곧잘 믿고 곧잘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외치던 노희경 언니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후회가 반복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는 변화발전하는 사랑이란 감정 그 자체이다.)

사랑은, 그렇다.
사랑지상주의는 될 지언정, 사랑만능주의는 되지 말 것.
그것이 좌절하지 않는 진정한 로맨티스트의 자세이다.

- 사람은 말야, 그리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진 않잖아.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보기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자기 뜻대로 꿈을 이뤄내는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뭐랄까...
내 마음인데도 누군가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ON이 되지 않고
거꾸로 누군가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OFF가 되지 않는 거지...
좋아하기로 마음 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기로 작정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 정말로 사랑했었어. 그랬는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런데도 끝나버렸지.
사람은 무엇에든 싫증을 내기 마련이야.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어.
계속 좋아하고 싶지만, 마음이 제멋대로 이제 싫증이 났다고 말하는 거야.
끝나지 않는게 있을까? 응? 너 역시 우리의 이런 관계가 계속될 거라고는 믿지 않을 거 아냐?


- '빠지다'라는 말과 '탐닉하다'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by 아멜리에증후군 | 2007/01/29 15:48 | 타인의 취향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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